[강형원 칼럼] 황금빛 내 인생

2022. 12. 14. 16:24MOMMAMHANA Mental Clinic

몸맘하나 멘탈클리닉(Mommamhana Mental Clinic) < 21 >

[ 출처 : KBS ] 


 

드라마는 한 시대의 현상을 거울처럼 반영하곤 한다. 안방드라마가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중년의 남성들에게 더욱 공감이 된다는, 요즘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주말 연속극이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이 그 주인공이다. 사회의 최소 공동체인 가족구성원의 역할과 각 구성원들의 욕망, 그를 둘러싼 갈등이 재미와 감동을 선물하고 있다. 갈등의 장면 한가운데에 내가 서있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누가 진짜 부모가 되어야 하는가? 낳아준 부모인가? 키워준 부모인가? 그렇다면 좋은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수의 출생 비밀을 둘러싼 두 집안의 씨름은 급기야 부모의 자격을 저울질하기 시작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생각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늘 청년들은 어떤 고민에 빠져드는가? 태수의 자녀들이 부딪치는 어려움과 좌절은 지난 해를 뜨겁게 달구던 소설『82년생 김지영』을 실감케 했고 드라마와 문학이 함께 고민하는 우리의 아픈 현실이 되었다. 뿌리 내리기 힘든 젊은 청년들에게 자식은 당연한 축복이 아니라 낳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선택하는 문제가 되어가고 서태수의 아내는 자녀를 위하는 길로 친딸을 부잣집으로 보내 친딸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위기로도 몰게 한다. 서태수는 모든 사실들이 자신의 무능이라 절망하고 병으로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바라보며 가족의 울타리를 스스로 철회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니들 편한 대로 살아라. 나는 신경쓰지 마”, “당신도 아이들한테 빌붙을 생각 마, 나도 당신 먹여 살리려고 태어난 사람 아냐.” 이제 가장(家長)에서 졸업을 선언하게 된 결정적인 대사가 딸과 아버지 대화에서 이어진다.

 

서태수 : “가족인데, 너에게 속죄할 기회는 줘야지”

지안 : “제가 왜요? 가족이면 무조건 풀어야하는 거에요?, 왜요? 가족이면 무조건 같이 살아야하는 거에요? 같이 있기가 힘든데? 엄마, 아부지 얼굴을 제가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보면서 살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서태수 : “그.. 그래도 기회는 한번 줘야지. 기회는.. 줘야지..”

 

서태수의 가족을 지키고 회복하려는 마지막 시도는 딸의 원망으로 처절하게 좌절되고 아버지는 더 이상 가장의 역할을 지켜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한 사람의 갈등과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외연적이든 내면적이든 그 뿌리는 가족과 연관되어 있다. 한 사람의 갈등은 관계 속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 인정, 배려를 받지 못한 상태로 성인이 되어버렸거나, 절대로 경험해서는 안되는 폭력, 학대, 무관심, 방치 상태에서 어른이 되어 깨어진 조각들을 부여잡고 있는 경우이다. 엄마의 마음의 방에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고, 아이들의 마음 속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것도 엄마이다. 아이들의 이상행동이 엄마 아빠의 태도만 바뀌었는데도 점차 회복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가족관계에서 상처도 받지만 치유되는 공간 또한 가족 안에 있다.

이렇게 개인의 문제를 ‘가족관계’ 속에서 원인을 찾고 풀어가는 방법이 가족치료적 접근이다. 개인상담은 독립된 개체로서 성장과 변화를 시도하지만 가족치료는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도 해결하고 자기를 찾아가는 방법이다. 이런 접근은 임상 현장에서 조심스럽게 시도되고 있는 심리치료의 한 형태이다. 가족 내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 그 문제가 표면상으로는 한사람의 행동문제로 나타나지만 가족 전체의 문제를 표현하고 있다. 가족은 개인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적 공간이며 서로에게 치료자가 되기도 한다. 또한 가족 중 한사람이라도 아프거나 힘들어지면 모두가 신경을 쓰게 되는 문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남과 여’에서 부부로의 만남으로 시작된 ‘가족형성기’에 아이를 하나 둘 낳으면서 유치원, 초, 중, 고를 걸치는 ‘가족확대기’, 자식들이 하나 둘 떠나는 ‘가족축소기’ 그리고 부부 둘 중의 한 명이 먼저 떠나게 되는 ‘가족해체기’에 이르는 일반적인 4단계 과정을 ‘가족생활주기’라고 한다. 부부에서 가족으로 확대되고 축소되고 자연스럽게 해체되는 과정이 우리의 인생사가 되는 것이다.

가족생활주기 외에 가족구조, 가족기능, 가족역사, 의사소통형태를 이해하는 것은 가족치료적 접근에 도움이 되는 개념들이다. 특히 가족 간의 의사소통은 문제해결 방법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교육과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활발한 의사소통의 핵심은 입장의 동일함을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가는 ‘공감(empathy)’이고, 의사소통의 장애물은 가정내 ‘폭력’과 일방적 ‘희생양’ 구조이다. 폭력은 가족의 틀을 망가뜨리고, 한사람의 희생만으로는 가족구조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 될 수 없다. 폭력, 학대를 직접 때리고 던지고 하는 것으로만 국한하기 쉽지만 언성만 높아져도 가정내 폭력으로 간주된다. 이 때 갈등의 10%만 ‘의견차이’에서 비롯되고, 나머지 90%는 ‘적절치 못한 목소리와 억양(wrong tone of voice)’에서 비롯된다는 심리학계의 통계는 눈여겨볼 만하다. 엄마 아빠의 잦은 다툼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공포감과 불안 그리고 죄책감을 유발하여 여러 영역에서 자신감을 갖기가 어려워진다. 아이는 난폭한 아빠로부터 엄마를 보호하려는 나이에 맞지 않는 행동을 요구받게 된다. 또 그 원인이 자신이라는 근거 없는 결론에 사로잡혀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르는 공포환경에 노출될까봐 미리 불안해하고 긴장을 놓지 못한다. 일본 구마모토 대학 의과대학 교수인 도모타 아케미(友田 明美)는 아동학대의 생생한 뇌과학적 증언을 통해 부모의 폭언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폭력현장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대뇌피질 청각 언어영역, 시각영역에 손상을 입히고 뇌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실증적 연구를 통해 밝혀냈다(치유되지 않은 상처, 유수양 역, 군자출판사).

가족관계에서 한사람의 일방적인 희생은 더 이상 미화될 수 없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장남, 장녀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그건 희생양일 뿐이다. 전통적 우리 사회에서 어머니의 일방적인 희생이 가족형태를 유지한 데 큰 역할을 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 그 결과가 화병이라는 병증을 얻게 된 것으로 보아 희생양이 불러온 역기능적 결과를 증명하는 셈이 되었다.

그럼 가족의 갈등 혹은 상처는 무엇으로 회복이 될까?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재미가 절정을 다해가며 가족의 갈등을 풀어가는 작가의 첫 실마리는 한 장면에서 시도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인상적인 장면이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딸 지안이는 누구를 원망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이기심과 미성숙을 돌아보게 된다. 그 과정 중에 함께 해준 가족들 특히 아버지의 사랑과 상처를 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어루만지듯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인 아버지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 곁에 존재하는 것이 그저 감사하고 다행이라 느끼는 것이다.

서태수는 마지막 생을 자신의 유년기를 보낸 고향 시골집으로 찾아가 마감하려 한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소박한 내용의 수첩은 가슴 뭉클한 연민을 느끼게 한다. 가족과 부모에 절망하고 죽음의 길을 돌아온 딸 지안이는 아버지에게 손수 만든 서랍장을 들고 찾아간다. 정색을 하는 아버지에게 서운하지도 절망하지도 않는다. “알았어요 갈게요. 다만 큰길가가 너무 어두워 차타는 곳까지만 데려다 주세요” 아버지와 딸은 안개가 자욱한 겨울 밤 길을 나란히 걷는다. 여전히 어색하고 여전히 침묵이 흐르지만 서태수의 손에 들려있는 손전등은 두 사람의 길을 밝히고 있다. 태수의 손전등은 딸의 발 앞으로만 향한다. “아빠 쪽도 좀 비춰요” “어...어” 자신 앞에 잠시 돌아온 손전등 불빛은 다시 딸 앞으로만 향한다. 그 사이 지안이는 아버지에게 그동안 가족들의 일상을 툭! 밀 듯 이야기한다. “아..아 그랬어?”

아버지와 딸이 밤길을 걷고 있다. 작은 손전등에 의지해 어색하게 걷고 있지만 더 이상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다.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는 발걸음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두운 이 길 위에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이 고맙고 감사하기 때문이다. 가족이기에 느끼는 사랑이다.

오랜만에 가족의 갈등과 성장 나아가 치유의 힘을 이야기하는 드라마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치유의 과정에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다음 회가 몹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