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원 칼럼] 부부(夫婦)는 무엇으로 사는가?

2022. 12. 14. 16:10MOMMAMHANA Mental Clinic

몸맘하나 멘탈클리닉(Mommamhana Mental Clinic) < 20 >

 


 

소와 사자가 너무 사랑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둘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지요. 신혼을 즐기며 소는 아침 일찍 일어나 사랑하는 사자를 위해 아침이슬 머금은 풀을 한아름 뜯어서 사자에게 주었습니다. 사자는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어디론가 나가버렸습니다. 당연히 소의 마음이 상했습니다. 사자는 그 길로 들판에 나가 토실토실한 토끼 한 마리를 잡아 의기양양하게 사랑하는 소 앞에 던져주었습니다. 삐져있던 소는 그것을 보고 화를 버럭 내며 뒷발로 차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둘이 실컷 치고 박고 싸우다 이혼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서며 하는 말이 둘 다 똑같았습니다.

‘난 최선을 다했어...’

 


 

톨스토이의 ‘소와 사자의 사랑이야기’라는 우화는 부부 상담 중 스토리텔링으로 사용되기 좋은 예화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부부는 항변합니다. 네가 바뀐다면 생각해보겠지만, 더 이상 난 할 게 없다. 난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서로는 주장합니다. 피해자는 나다. 억울한 것도 나다. 너 때문에 힘들어 못 살겠다. 연애할 때의 그 사람이 결혼 후 딴 사람으로 변해버린 걸까요? 우리는 나 자신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결혼 전에는 상대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려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배려합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지요. 결혼 후에는 내 생각을 내세우기 쉽습니다. 소와 사자가 자신의 입맛 대로 식탁을 마련한 것처럼 말이지요. 사람이 바뀐 것이 아니라 태도가 바뀐 것입니다. 태도는 왜 바뀔까요? 시간이 흐르면 각자의 욕구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남녀는 결혼 과정 중에 갖게 되는 ‘욕구(need)’가 있습니다. 결혼을 결정한 이유를 들어보면 명확해지기도 합니다. 아내는 보호받고 싶은 사랑으로, 남편은 존경받고 싶은 사랑으로 욕구가 표현됩니다. 충족되지 않으면 욕구불만, 좌절로 이어져 삶의 의지마저 내려놓게 됩니다.

결혼이 가족과 가족의 만남이다 보니, 부부의 문제 중에 적지 않은 부분이 시댁과의 관계에서 드러납니다. 아내는 남편을 통해 시댁이라는 환경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고 내 편이 되어 지켜주길 원합니다. 남편은 도리어 아내를 통해 효도를 하려고 맘먹은 사람인 듯 행동하지요. 이 때의 남편은 말 그대로 남(시댁) 편이 되는 것입니다. 아내가 결혼해서 기대하는 가장 본능적 욕구가 좌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남편은 아내로부터 대우 받고 싶어 하는 ‘존경의 욕구’가 충족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결혼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사회적인 책임이 어떠하든 나를 인정하고 믿어주는 한 사람으로서 아내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 ‘바른 말로 정확히 콕 짚어내는’ 아내의 목소리입니다. 아내는 조언하고 권유했다고 하지만 남편은 지적받고 비난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남자의 분노 기저에 깔려있는 무시당함이 이에 해당합니다.

남자가 그토록 분노하는 이유는 무시당했다는 마음이 기저에 깔려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의 욕구는 일상을 의미있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하지만 이것은 서로 배려하는 마음 가운데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제 포기했어’, ‘바라지도 않아’, ‘기대하지도 않아’ 이런 말들이 등장하게 되면 서로의 따뜻한 마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얼어버린 마음을 녹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욕구좌절이 무망(無望)함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욕구좌절의 또 다른 표현은 분노입니다. ‘짜증(irritable)’과 ‘분노(anger)’는 약간의 이해가 필요한데, 짜증은 ‘내가 힘들다’는 우울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공감 받고 알아달라는 인정의 욕구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신경증의 일종인 히스테리(Hysteria)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 ‘자궁(Hystera)’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내에게 더 짜증(hysterical)이 많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아내는 이웃집 남자한테는 짜증내지 않습니다. 이 때 남편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입니다. 들어주기만 해도 아내의 짜증은 해소가 됩니다.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내가 있잖아’, ‘내가 좀 더 노력해야되겠네...’ 이렇게 공감만 해줘도 짜증은 안심으로 변하고, 남편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라는 가치로 되돌아옵니다.

짜증과 다르게 분노는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을 향하여 강하게 비난하고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게 됩니다. 남자의 분노에는 폭언과 험한 표정 그리고 가해 행동까지 동반되는 경우가 많은데, 분노의 이유가 확실해도 분노로 인한 폭언과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는 없습니다. 순간 윽박지르는 목소리에 평생을 가슴조이면서 지냈다는 화병 할머니의 고백은 세월과 함께 남겨진 깊은 상처였습니다.

‘남편이 출장 간다고 하니까 오히려 편해졌어요’, ‘남편의 퇴근 시간이 되면 조급해지고 가슴이 두근거려요’,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숨이 막혀요’ 남편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문화에서 자주 접하는 아내들의 증상들입니다.

남자들의 분노에는 ‘구원자적 환상(fantasy)’과 연관 되어 있습니다. 아내가 나로 인해서 기뻐하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내의 눈물을 자신의 탓으로 생각해서 못견뎌합니다. 아내의 눈물은 남편으로서 구원자적 환상이 깨져버리는 순간입니다. 아내는 구원자로서의 남편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공감해주고 해결을 도모하는 것을 원하는데 말이지요. 아내의 현실감각과 남편의 과도한 책임감을 서로 이해하게 될 때 풍성한 부부의 식탁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결혼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현실치료(reality therapy)의 개발자인 미국의 정신과 의사 글라서(William Glasser)는 ‘내가 원하는 것, 즉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충족시키는 방법을 선택함으로 현재와 미래를 즐겁게 살아나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나와 상대의 욕구와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선택하는 과정이 부부생활인 것입니다.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것입니다.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것입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