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원 칼럼] ‘엄마’라는 이름으로

2022. 12. 14. 17:18MOMMAMHANA Mental Clinic

몸맘하나 멘탈클리닉(Mommamhana Mental Clinic) < 23 >

 


 

이 땅의 모든 생명의 처음은 엄마에서 시작된다. 특히 사람은 엄마라는 이름의 보살핌이 없이는 한 사람으로 우뚝 설 수가 없다. 식탁에 앉아 밥알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 문득 생각한다. 한 알의 낱알들이 내게로 오기까지 얼마의 기다림과 얼마의 수고와 눈물의 모험이 있었을까! 새싹들이 세상의 침묵을 깨고 일제히 소리치는 봄날 아침 꼭꼭 씹으며 생각해 본다.

 




남과 여로 만나 사랑하며 결혼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부모가 된다. 부모가 되기 위해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은 드물다. 준비된 부부라 해도 막상 아이가 태어나면 쉽지 않은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특히 많은 육아의 부분을 담당하는 엄마들의 육아부담은 아빠들조차도 상상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입덧은 엄마의 신체에 이상 생명이 침입했다는 사이렌 소리와 같다.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새 생명은 요란스럽게 신호를 보낸다. ‘엄마 나예요! 나라구요!’ 곧 엄마의 신체는 마음보다 먼저 아기를 받아들인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생명처럼 엄마의 몸은 아가를 품는다. 여기는 시작에 불과하다. 출산과 시작된 육아 생활은 그야말로 전쟁터이다. 불과 몇 달 전에는 엄마에게 응석부리고 자신의 욕구에 민감하고 자유롭고 당당한 딸이었을 그녀가 엄마가 된 것이다. 갑자기 이 모든 변화는 찾아온다.

육아는 왜 힘이 들까?

육아에 관련된 도서가 어마어마하다. 그 만큼 할 이야기가 많다는 의미이다. 육아 성공담이나 완벽한 듯한 엄마의 어금니에서 당당히 나오는 소리들은 그야말로 기가 죽고 엄마 열등감에 휩싸이게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감동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부러워야할 이유는 하나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맞는 길을 성실히 찾았고 그 길을 힘있게 걷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습관을 모방하고 연습해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유익한 도전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 기쁘고 아이가 기꺼이 함께해 줄 육아 방법을 발견하지 못하면 육아는 언제나 스트레스일 수 있다. 나와 내 아이만이 걸아야 할 육아의 길을 찾을 것! 이것이 힘든 육아를 돕는다. 이때 필요한 믿음이 있는데 아이는 이미 완전한 존재로 태어났음을 기억하는 일이다. 다만 그 존재가 빛을 발할 때까지 엄마라는 손길이 필요한 것이다. 존재만으로 귀한 아이가 엄마라는 관계를 통해 빛나게 빚어가는 과정이 육아의 과정이다. 엄마의 과도한 육아 경쟁이나 이로 인해 지친 마음은 아이의 모든 영역이 나로 인해 좌지우지 된다는 강박적 생각으로 몰고 간다. 아이를 여유 있게 지켜봐 줄 수가 없다. 아이들이란 심심해야 생각을 하고 실수와 무료한 시간들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해 간다. 모든 육아엔 아이의 가능성을 엄마가 믿어주는 일처럼 먼저가 없다.

이미 십대의 두 자녀를 둔 40대 A씨가 우울증으로 상담을 시작해 종결 시점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나 때문에 아이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은 엄마인 저를 점점 힘들게 했어요. 어떻게 해서든 그 짐을 벗어버리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 중에 놓쳐버린 아이들의 모습이 미안하고 죄스러워 절망스러웠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이미 완전한 존재로 제게 왔다는 사실에 안도가 되었어요. 내가 좀 부족해도 우리아이는 아이만의 길을 걸을 수 있겠구나 하고요.”

중요한 육아기간이 따로 있을까?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엄마와 보낸 3년의 경험은 특별히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 시기에 아이는 엄마와의 ‘애착(attachment)’을 경험하게 되며, 인생의 기본적인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첫 단계를 경험하고 되고, 이때 아이의 성격이나 정신 구조의 틀이 이때 대부분 형성이 된다.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배가고파 우는 아이에게 빈 젖을 물리는 아빠는 이에 노발대발 성을 내는 아내의 마음을 알까? 울음의 대화에도 허투루 반응하지 않고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아이는 엄마의 신뢰로운 반응들 즉, 스킨십과 정서적 교감을 통해 세상을 배워간다. 자신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인 것을 엄마의 손길을 통해 확인해 가는 것이다.

30대 직장맘 B씨는 일과 육아를 감당하는 꽤 유능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아이의 출산 후 가능한 3년의 기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직장의 현실은 그렇지 않듯이 변변한 육아 휴직도 갖지 못하고 워킹맘이 되었고 생각보다 일과 육아의 병행은 쉽지 않았다. 그녀는 말했다. “제게 육아의 제1 터널을 첫 3년이라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짧지만 아이에게 더 집중하려구요. 너무 힘들어서 끝이 없을 것 같았는데, 이 터널이 곧 지날 것이라는 말이 위로가 되었어요.”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하고 맞보는 엄마들의 브런치 타임을 엿보며 “주부들 좋겠어. 편하게 커피나 마시고”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은 옆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 그녀들은 지금 중요한 경주를 마치고 다음 경기를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달콤한 차 한 잔의 여유가 그녀들에게는 약소하기만 하다. 주부의 24시는 연장의 연장으로 이어진 근무의 연속이다. 수당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상사의 칭찬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엄마라는 이름에 떳떳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때때로 주부의 위대함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지식을 통해 깨달아 배운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 더욱 사랑하려 노력하고 있는’ 나의 스승들이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잠시 지쳐 나를 찾을 때 나는 모든 위로와 칭찬을 전해주려 노력한다.

“많이 힘드셨지요? 그만큼 하셨으면 잘 하신 겁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누구의 엄마로서가 아닌 내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세요. 아이에게 정중히 엄마가 피곤해서 쉬고 싶다고 요청해 보세요.” 라고.

아이에게 좋은 엄마란 어떤 엄마일까?

바로 우리 엄마이다. 아이들은 울고 떼를 쓰며 이를 증명해 내라고 말한다. 어떤 상황에도 나를 버리지 않고 어떤 모습에도 실망하지 않으며 언제 돌아와도 그 자리에서 기다려 달라고 말이다.

주부 C씨는 한참을 살다보니 무엇하나 내세울 것도 없는 너무 평범한 사람인 것이 초라해 보였다고 했다. “잘못 살았나 후회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저한테도 자랑할게 하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리엄마에게 내가 어떤 딸이었는지, 또 내 아이에게는 나란 존재가 세상에서 유일한 엄마라는 사실이... 생각해보니 제가 너무 소중한 사람이었더라고요.”

한참 상영 중인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감독> 영화의 주인공 혜원은 도시에서 취업도, 사랑도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왜 돌아 왔냐는 질문에 “배가 고파서” 라고 말한다. 겨울 황량한 눈길을 헤쳐 돌아간 고향 집엔 더 이상 엄마가 없다. 엄마와 함께한 공간과 숲과 요리와 추억만이 있다. 고향집에서 엄마의 음식을 기억하며 요리를 한다. 그리고 맛있게 먹는다. 고향의 겨울, 봄, 여름, 가을 다시 겨울을 맞으며 혜원은 쉼을 얻고 자신을 찾아간다.

위로의 말보다 잠시 쉼이 필요할 이 땅의 엄마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은 엄마라는 특별한 존재임을 잊지 마십시오.

아이들은 세상을 헤쳐 나갈 놀라운 생명력이 있음을 믿어보세요.

엄마인 당신은 자녀들의 ‘리틀 포레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