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원 칼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22. 8. 9. 15:50MOMMAMHANA Mental Clinic

몸맘하나 멘탈클리닉(Mommamhana Mental Clinic) < 3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물음은 인류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현재까지 계속되는 존재론적 고찰입니다. 톨스토이는 그의 고전을 통해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가난한 구두수선공 시몬에게는 아내와 자식이 있습니다. 하루 품삯 대부분을 빵 구입해야하는데 써야하는 고단한 일상이 그를 구속합니다. 혹한의 겨울이 오기 전 시몬은 아내와 함께 입던 낡은 무명외투 대신 새 양가죽 외투를 사기로 마음먹고 길을 나섭니다. 그러나 자못 고양된 기분은 얼마가지 못하게 됩니다. 마을사람에게 빌려준 돈을 되받아 외투 값에 보태야 하는데 상대는 돈을 갚을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상심한 시몬은 그나마 남은 푼돈을 보드카로 털어 넣습니다. 처량한 신세인 시몬은 술기운에 의지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다가 벌거벗은 청년을 발견합니다. 순간 그는 머뭇거리게 됩니다. 마음속으로 갈등을 합니다. 자신의 꼴이누구를 돕는 처지가 못 되었고 혹시 예상 못할 봉변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청년을 그대로 지나치려 할 때 곧 부끄러운 생각과 연민으로 시몬은 뒤돌아 청년에게 갑니다. 결국 자신의 외투를 벗어 불쌍한 청년에게 입히고 서둘러 집으로 데려갑니다.

그 시각 아내는 남편과 새 외투를 기다리며 마지막 남을 빵으로 저녁을 준비합니다. 도착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아내는 노발대발합니다. 술에 취한 남편은 새 외투는커녕 헌 외투까지 낯선 청년에게 입히고 함께 왔으니 그 실망감에 화가 치밀었습니다. 술주정뱅이에게 줄 저녁은 없다고 소리칩니다. 그러나 격한 감정을 누르고 낮선 청년을 쳐다본 아내는 침묵합니다. 남편은 말합니다. “여보 당신에겐 신의 사랑이 없어요?” 그 말에 아내는 다시 청년을 바라보고 마음이 누그러집니다. 그리곤 발길을 돌려 화덕이 있는 곳으로 가 마지막 빵을 꺼내고 식탁을 준비합니다. 낯선 청년은 하느님께 쫓겨난 천사였습니다. 그는 구두 수선공 부부를 통해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알게 되었고 그 열쇠를 갖고 하늘에 오르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의 걱정으로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들의 사랑에 의해서 산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가치에 입각하여 정신치료 임상에서 실제 적용하고 있는 개념이 바로 ‘러빙 프레젠스(Loving presence)’입니다.

 최근 심리치료와 상담에 있어서 “공통 요인 이론(common factors theory)’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치료기법들이 심리학적 치료 효과에 공통적으로 설명되는 요인들이 있다는 겁니다. 스콧 밀러(Schott D. Miller)는 그의 대표저서「Escape from BABEL(번역본: 유능한 상담자의 심리치료)에서 기존의 고전적 연구들을 통해 심리치료 효과에 영향을 주는 4가지 공통요인을 소개합니다. 첫째, 심리치료에 있어서 ‘치료 기법과 방법’이 미치는 영향은 1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이는 치료자들이 비중있게 여기는 기법에 관한 통상적 기대치에 비하면 미미한 수치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환자의 기대와 프라시보의 효과’도 치료기법과 같은 비율인 15%로 정도의 치료효과를 보였습니다. 셋째는 ‘환자의 리소스(resource)’로 치료효과에 40%라는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고 마지막으로 ‘치료자의 인격’이 3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보고하였습니다. 그의 연구를 통해 심리치료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환자의 리소스(resource)와 치료자의 인격 즉 환자-치료자 간의 관계 속에서 치료가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리소스’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사람의 강점과 자원을 말합니다. 좋은 체험, 인간관계, 성격, 기질, 취향, 취미, 재능, 고향, 주변 환경 등 살아오면서 경험된 내적, 외적 그리고 관계적 경험과 체험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힘든 문제로 인해 리소스가 가려진 상태에서 치료자를 찾습니다. 치료자와 함께 다시 자신의 리소스를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심리치료입니다. 몸에 상처가 나면 인체 내 항상성(Homeostasis)의 원리에 의해 상처가 아물 듯, 마음의 상처도 내면의 유기성(Living system)의 원리에 의해 스스로를 치유의 방향으로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무생물이 아닌 생명력이 있는 유기체(organism)로서 자기 치유의 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환자가 갖고 있는 리소스는 결국은 자신을 돌아보아 성장케 하는 근원이 됩니다.

이때 치료자는 환자의 존재 자체에 대한 무조건적 긍정과 존중의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공감과 이해는 그대로 환자에게 전달됩니다. 이것이 치료적 의도를 가진 치료자의 마음가짐이자 결단입니다. 치료자도 수행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처럼 상대방의 리소스를 통해 내면에 빛나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보려고 하는 자세와 그 과정이 러빙 프레젠스(Loving presence)입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The Road Less Traveled)」의 저자 스캇펙(M. Scott Peck)은 “사랑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자신을 확장하려는 의지”라고 정의합니다. 사랑의 개념을 감정에 국한하지 않고 ‘의지’의 표현으로 확장한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은「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며 삶이 기술인 것처럼 사랑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을 추상적 개념이 아닌 실체적 내용으로 보고 연습 가능한, 그래서 습득 가능한 기술로 본 것입니다. 그 연습의 과정이 바로 ‘러빙프레젠스(Loving presence)’의 실재입니다.

어원적으로 보면「presence」는 ‘현존’, ‘존재’, ‘임재’, ‘지금’, ‘선물’이라는 우리말 번역의 뜻을 모두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Being with love’ 즉 ‘사랑을 가지고 함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는 노력입니다.

러빙프레젠스 안에 있는 환자는 안심감이 들고 존중받는 경험을 합니다. 사람은 안전한 장소에서 변화를 시도합니다. 안전하지 않으면 더 두꺼운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습니다. 또한 환자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지지하는 가운데 생성된 치유적 생명력은 치료자에게로 고스란히 되돌아옵니다. 사랑의 훈련 과정은 환자와 치료자를 동시에 성장케 하는 힘을 발휘합니다.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따뜻하게 보려는 자세, 그러한 노력이 바로 러빙프레젠스입니다.

다시 서두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시몬과 그의 아내는 청년을 대면했을 때의 감정만으로는 사랑을 베풀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시몬의 첫 마음은 이미 청년을 지나쳤고 노발대발 소리치던 아내는 손님을 맞이할 마음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부부의 마음은 갈등을 합니다. 곧 자신들의 무정함을 부끄럽게 여기고 돌이켜 청년의 존재를 응시하게 됩니다. 그들의 행동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나그네의 식탁은 이렇듯 돌이킨 발걸음과 돌아본 마음으로 준비된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삽니다. 그 사람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사랑으로 삽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축복 속에 있습니다. 이것이 러빙프레젠스의 핵심 가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