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원 칼럼] 오지상승요법(五志相勝療法) - 슬픔으로 분노 녹이기(悲勝怒)

2022. 12. 13. 12:12MOMMAMHANA Mental Clinic

 

[강형원 칼럼] 몸맘하나 멘탈클리닉(Mommamhana Mental Clinic) < 5 >

 


간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살고 있다. 우리는 감정을 이해하고 어루만질 수도 있고 반대로 그 감정에 복종당할 수도 있다. 어떠한 일을 결정하기에 앞서는 것은 감정이고 이성이 뒤따라 합리성을 찾는다. 우리의 일상은 감정상태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많은 질병의 원인도 감정의 상처에서 시작되고 치유 또한 그가 지닌 감정을 통해 일어난다.

감정의 흐름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예화가 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지하철 안은 조용했고 평화로웠다. 사람들은 신문을 읽거나 생각에 잠겨있거나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 얼마 후 한 중년 남자와 자녀들이 전철을 타면서 분위기는 순식간에 엉망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이 마구 떠들어대며 제멋대로 날뛰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을 말리지 않고 앉아있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할 즈음, 한 사람이 아이들을 좀 조용하게 할 수 없냐고 말했다. 그제서야 아빠는 상황을 인식한 듯 아이들을 불러 모으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조금 전에 아이들 엄마의 장례를 마치고 오는 길입니다. 앞이 캄캄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아이들도 이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순간 지하철 안은 숙연한 공기로 가득찼다. “부인이 돌아가셨다고요? 저런 안됐습니다. 뭐라고 위로해야할지 할 말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상황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고 짜증과 화는 사라지고 동정심과 측은한 느낌이 자연스럽게 넘쳐 나왔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  -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이 예화에는 분노의 해소과정을 설명하는 한의학적 콘텐츠가 있다.

‘슬픔으로 분노를 이긴다’는 오지상승요법의 비승노(悲勝怒)의 원리를 설명하는 좋은 사례이다. 인간의 감정은 연속선상의 스펙트럼으로 무수히 많은 감정복합체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면의 주된 정서를 차지하는 핵심감정이 있다.

오지상승요법은 오행 상극이론에 따라 문제되는 감정을 상극이 되는 감정으로 다스리는 방법이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감정도 정체되면 문제증상이 된다. 우울이라는 감정이 핵심감정으로 자리를 잡으면 우울증이 되는 것이고, 우울증과 조증을 넘나들면 양극성 장애가 된다. 또한 불안이 주 감정이면 불안증이 되고, 공포, 두려움이 주 감정이 되면 공포증 혹은 공황장애가 된다. 마찬가지로 분노가 내 마음의 대부분을 차지하면 나는 분노덩어리가 되어 이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행동적으로 증상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칠정(七情) 중에서도 가장 조절하기 어려운 감정이 바로 분노이다. 분노는 모든 정신적-신체적-사회적-영적 영역을 병들게 하는 문제감정이다. 고혈압, 중풍, 심장병 등의 심뇌혈관 질환뿐만 아니라 우울증, 화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질환에 밀접한 영향을 끼친다. 대인관계를 망가트리고 심지어 가정에서의 분노 표출은 씻을 수 없는 과오로 대물림하는 아동학대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분노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충격스런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현상 속에는 분노라는 감정에 매몰된 폭력이 존재한다.

분노 감정은 비난, 좌절 등 특정 종류의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분함 혹은 억울함, 뚜렷한 자극이나 사건 없이 발생하는 성마름, 짜증과 같은 상태, 그리고 공격성, 충동성, 논쟁적(언어적) 공격성 등을 포함하고 있다. 노(怒)는 노예 노(奴)와 마음 심(心)의 결합어로 ‘노예와 같이 매어있는 감정상태’ 가 바로 분노이다. 우리나라 민족문화 증후군에 해당하는 ‘화병’은 오랫동안 참았던 화가 정신적, 신체적으로 문제가 되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질환이다.

외상 후 울분장애(Posttraumatic embitterment disorder, PTED)는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린덴(Linden)이 독일 통일 후 동독인들이 겪은 울분과 분노를 주 증상으로 하는 현상들을 정리하여 발표한 질환명으로, 실직, 이혼, 별거 등 일상의 부정적인 생활 사건발생 후 분노, 화, 울분 등의 감정 호소와 좌절, 굴욕감에 시달리게 되는 정신질환이다. 부당한 대우 등의 일상의 부정적인 생활사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은 화병과 유사하지만, 자기 통제력을 상실하고 울분이 지속되어 복수심이 많고, 자발적으로 치료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것은 화병과 다른 특징이다. 화병은 복수심보다는 자기 탓으로 돌리는 희생적 성향이 많고, 신체적 증상으로 표현하며, 억울함을 알아달라는 인정 욕구와 자발적 치료의지가 강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때마다 등장하는 분노조절장애의 정확한 질환 이름은 ‘간헐적 폭발성 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 IED)’로 DSM-5에서는 ‘파괴적, 충동조절 및 품행장애’라는 큰 범주에 속하는 정신질환 중 하나다. 합당한 이유 없이 사소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불시에 분노를 폭발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를 말한다. 간헐적 폭발성 장애나 외상 후 울분 장애의 경우는 자발적으로 치료할려고 병원을 내원하는 경우가 드물어 더 큰 문제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듯 분하게 하는가? 어떻게 하면 분노를 몰아낼 수 있는가?

그 답은 치유과정에서 찾아야 한다. 상대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강철로 굳어버린 분노의 감정도 녹여준다. 이것이 앞서 언급한 한의학에서 말하는 오지상승요법 중 금극목(金克木)의 비승노(悲勝怒)이다. 비(悲)는 슬픔을 넘어 자비(慈悲), 비애(悲哀)의 뜻을 내포하고 있어 ‘자비, 용서, 긍휼지심, 측은지심 그리고 애통하는 마음이 분노를 이긴다는 의미’ 이다. 금대 장자화 선생은 비승노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슬픔은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데, 슬프고 측은한 마음의 쓴소리로서 감동을 주라(悲可以治怒 以愴惻苦楚之言 感之)”고 하였다. 비승노(悲勝怒)는 한의소학 고전이 현대인들에게 주는 분노조절 프로그램이자 감동프로젝트이다. 분노조절장애, 화병, 울분장애 환자들에게 유용한 치유법이다.

분노, 화 조절 방법으로는 분출구를 만들어야한다. 불은 구멍을 찾아다닌다. 그래서 분노는 구규(九竅)를 병들게 한다. 화를 억누르거나 폭발하기보다 적절한 분출구를 만들어 조절할 수 있다. 감정분출 방법으로 찐한 감동을 경험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비승노법은 생활 속에서도 적용가능한 방법이다. 기도문 형식으로 일기를 쓴다던가, 슬픈 영화를 본다던가, 감동적인 책을 본다던가. 가슴 뭉클한 콘서트를 보러 가는 것이다.

분노가 해소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나의 진료실에서도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다.

어릴 적 성폭력 피해 경험으로 누구에게도 말 못하며 지내온 한 여대생의 분노가 있었다. 정신치료 과정에서 안전의 장과 치료적 관계성을 확립한 후 마음챙김 명상상태에서 텅 비어버린 가슴 한가운데를 발견하고 흘린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한참을 머물며 눈물 가운데 서 알아차린 것은 ‘아, 이건 슬픔이야’였다. 이 자리에 치료자로서 함께 머물며 할 수 있는 것은 긍휼히 여기는 공감적 눈물뿐이었다. 그러자 분노의 바닥에 깔려있는 깊은 슬픔이 눈물로 위로받고 비로소 분노의 화살과 짜증이 급격히 해소되었다. 그 후에 ‘니 잘못이 아니야, 니가 그런게 아니야, 니가 숨어서 지낼 필요없어’ 라고 선언하며 삶의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은 감동 자체이다.

분노의 마음이 복수심으로 전복되지 않고 내면에서 다시 찾은 측은지심, 긍휼지심으로 자아의 균형을 회복하는 놀라운 경험은 자신을 향해 흘리는 눈물에서 시작되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라는 성서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