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원 칼럼] 보이지 않는 마음, 신체감각으로 구체화 시키기

2022. 12. 13. 17:15MOMMAMHANA Mental Clinic

몸맘하나 멘탈클리닉(Mommamhana Mental Clinic) < 13 >

 


 

봄이 다시 찾아왔다. 봄의 신비는 창 밖에서 펼쳐지고 있다.

겨우내 미동도 않던 나무와 꽃가지 사이에 움이 트고 물이 돌기 시작한다. 봄을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은 숨이 벅차다. 계절의 역동 앞에 사람은 어떠한가? 노벨 의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알렉시스 카렐은 『인간, 그 미지의 존재』MAN, The Unknown에서, “인간에 관한 정보는 너무 많아 인간에 관한 논문을 모으면 수백 수천 권에 달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인간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 인간을 연구하는 자들은 아직도 해답을 발견하지 못했고 매우 초보적인 지식 속에서 헤매고 있을 뿐이다“라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했다. 

진짜 신비로운 것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사람 앞에 있다.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하루, 한 해, 사계절의 변화와 같이 자연의 흐름이 있듯 사람에게도 변화의 모양이 가능할까? 수많은 결심으로 변화를 시도해보고 애써봐도 여전히 제자리인 사람은 또 왜일까? 사람은 스스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가?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무의식은 변화를 싫어한다’는 고전적인 정신분석이론이 아니더라도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니 변화를 두려워한다. 우리의 행동은 대부분 무의식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진다. 무의식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의 많은 것들이 핵심신념(Core brief)으로 전환되어 의식(consciousness)의 영역에서는 좀처럼 어떤 행동의 원인을 알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 상태가 중요하다. 의식의 가장 밑바닥에 해당하는 마인드풀니스 상태 즉, 마음챙김 상태에서는 무의식의 동요를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가 마음챙김 명상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많은 좋은 치료법과 설교, 유튜브 속 명강사들의 명언들은 순간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어도 일상은 해오던 패턴대로 가기 십상이다. 좋은 말을 들어서 사람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리치료도 의식의 어느 레벨에서 이뤄지는지에 따라 분류를 할 수 있는데, 일상적인 의식수준에 이뤄지는 심리치료의 대표적인 것이 인지행동치료(CBT)라면, 무의식 상태를 유도해 행해지는 것이 최면 요법이다. 어떡해서든 무의식의 협력을 얻어 치료에 적용해보자는 취지로 도입된 것이 흔히 3세대 심리치료법이라고 하는 마음챙김 기반 심리치료법들이다. 

마음챙김 상태에서 시도되는 다양한 심리치료기법들 중에 신체감각에 집중해서 무의식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있다. 신체감각 심리치료자들은 이를 포커싱(Focus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심리치료기법을 확립했고, 하코미 심리치료의 창시자 론 컷츠(Ron Kurtz)는 컴퓨터 정보처리 용어를 차용해서 억세싱(Accessing)로 심화시켜 나가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동의보감에서는 ‘허심합도(虛心合道)’라고 하여 치료자로서 자세를 도(道) 수행적 의미로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천지가 비록 크나 형태가 있는 것은 조종할 수 있어도 형태가 없는 것은 조종하지 못한다. 음양의 이치가 비록 묘하지만 기운이 있는 데만 작용하고 기운이 없는 데는 작용하지 못한다. 그리고 온갖 생각이 어지럽게 떠올라도 의식이 있는 데만 작용하고 의식이 없는 데는 작용하지 못한다“고 하였고 ‘이렇게 이치를 수양한다는 것은 우선 그 몸을 단련시키는 것만 못하다. 몸을 단련하는 요령은 정신을 통일시키는 데 있다.’하여 집중력과 기를 모으는 수행법에 대해 언급하였다.  

우울증 앓고 있는 A씨가 답답증을 호소할 때 마음챙김 상태에서 행해진 억세싱(Accessing) 내용 일부를 보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요’ 

‘답답함이 어디에서 가장 많이 느껴지나요?’ 

‘가슴에서요.’ 

‘가슴 어디요. 왼쪽? 오른쪽? 가운데?

‘한가운데요’

‘가슴 한가운데 어느 정도 크기로 느껴집니까?.’ 

‘손바닥만한 크기요.’ 

‘가슴 한가운데 손바닥만한 크기로... 형태가 있나요?’ 

‘굉장히 큰, 네모나게 각져 있는 모양으로요.’ 

‘그것을 가만히 만져볼 수 있나요?’

‘너무 반질반질해서 만지지 못해요’

‘무게는 어느 정도 됩니까?’ 

‘큰 돌덩이 같아요.’ 

‘색깔이 있나요?’ 

‘붉은색이요.’ 

‘손바닥만한 크기로 네모난 각진 모양으로 너무 반질반질해서 만지지도 못하게, 붉은 큰 돌덩이같이 묵직하게 가슴 한가운데 있네요?’

‘네’

‘그곳에 가만히 머물러 있어 보시겠어요?

(한참을 머물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젓기 시작함)

‘거기에 머물러있으니까 올라오는 무엇이 있나요?’

‘저는 한 번도 엄마한테 살가운 그런 소리 들어본 적이 없어요.(계속 고개를 젓고, 눈물을 흘리며)’ 

‘엄마한테 따뜻한 말 한마디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거네요?’

‘네, 엄마는 나를 한 번도 안아 준 적도 없고, 사랑 해준 적도 없어요. 칭찬해준 적도 없어요’

‘가슴 한가운데 큰 돌덩이 같은게 네모난 각진 모양으로 손바닥만하게 답답하게 붙어있는 것을 가만히 머물러 바라보니까, 사랑받은 적도 따뜻한 말을 건네받은 적도, 칭찬을 받은 적도 없다는게 서러워 막 올라오는 거네요?

‘네’(계속 눈물은 흐른다. 티슈가 책상 위에 한참 쌓인다.)

‘살가운 소리 들어본 적도 없고, 사랑을 받은 적도 없다고 느끼는 A씨는 몇 살쯤 되어보이나요?

‘6살 정도요’

‘6살 A는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머리모양을 하고 있나요?’

‘분홍 원피스요. 머리는 뒤로해서 하나로 묶었어요’

 


 


A씨는 이과정을 통해 일상에서 느낀 답답함이 마음챙김 상태에 머물러 몸 안에서 구체화하여 어릴 적 엄마에 대한 감정과 6살 내면아이(Inner Child)를 만나 지금 현재의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내면아이는 다음 회차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내면아이가 나타나더라도 이 또한 구체적으로 몇 살인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상황설정을 하고, 그 다음에 그때 그 감정에 공감만 해줘도 많이 편해진다. A씨 경우도 이런 과정을 걸친 후 답답함이 후련히 사라지고 그동안 억눌렀었던 사랑, 인정의 욕구에 대한 실체를 발견하고 한결 가벼워졌다. 이렇게 평소의 의식상태에서 새로운 의식상태로의 이행을 통해 개인의 심리적 문제를 심화하고 처리해 통합해가는 과정이 심리치료의 전과정이다.  

위에서 다룬 억세싱(Accessing), 포커싱(Focusing), 신체화 집중이라는 과정은 마음챙김 상태에 머물러있으면서 집중해서 감각, 범위, 상태, 형태, 색채, 재질, 온도, 냄새 이런 것들을 이미지화하여 구체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의 핵심은 내면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핵심신념’을 찾아내는 데 있고, 지금 현재 그것을 안전한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있다. 

무의식 속으로 밀어 넣은 상처들은 언젠가는 일상으로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대부분 이러한 문제는 당사자들에게도 낯설다. 너무 막연해서 원인도 모르고 힘들어져버리는 것을 이미지화, 구체화 과정을 통해 해결의 답을 찾는 경우가 많다. 머무르게 하고 구체화하면 할수록 내면의 문제해결에 가까이 갈 수 있다.